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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케의 시공간/10줄 일기와 에세이

[프롤로그] 리케의 블로그를 시작하며..

by 리케 2023. 5. 9.

나에겐 계획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원대하고 구체적인.

어긋날 수 있는 가능성의 수를 모두 더하고, 일어날 수 있는 온갖 문제들에 대해 잘 대처해가며 이루어갈 계획들이었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래왔듯이 내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사건들이  일어났고, 나는 다시 바닥을 쳤다.

그리고 이제는 더이상 계획을 세우지 않기로 했다. 삶에 나를 그냥 내맡기기로 했다.

 

3월 22일, 10년간 다니던 직장에서 퇴사했다. 퇴사 두 달 전부터 그간 하고싶었던 일들을 계획하고 실행에 이미 옮긴 터였다. 존경하는 타투이스트를 찾아가 타투를 배우기 시작했고, 그림의 기본기를 다지기 시작했으며 N잡러라는 계획도 있었기에 인스타그램으로 활동하던 레진 아트 작업에 대해서도 오프라인 샵을 런칭하려 했었다. 그동안 소홀히 했던 외국어 공부도 좀 더 체계적으로 해 나갈 계획이었다. 퇴사 전 블로그를 시작하고 글을 써가며 다양한 취미와 직업을 소재로 유튜브도 시작하려 했다. 아름다운 고양이 두 마리와 넓직한 집, 취미인 요리까지.. 브이로그 소재로는 딱일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카메라도 샀다. 원하는 편집 프로그램 사양에 맞는 맥북도 구입했다. 이 이상 완벽한 퇴사 준비는 없었다.

 

타투이스트 준비를 시작한 지 한달 만에, 함께 사는 아버지가 혈관성 치매와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으셨다. 그에 이어 나의 애묘는 치명적인 거대 종양이 생겨 긴급 수술을 받고 생사를 오갔다. (16년을 함께 한 아이였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회복 기간 중 암이 전이되어 항암 치료를 받게 되었다. 퇴직금을 비롯 긴급 상황을 위해 모아두었던 자금은 계속해서 빠져나갔고, 타투 수업을 더이상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아버지에게 아침 저녁으로 약을 챙겨드려야 했고, 혈관성 치매인 만큼 고지혈증 환자식 식단과 운동도 병행해야 한다고 했다.함께 사는 오빠가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타투 수업을 진행하려면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아버지와 고양이를 돌보면서 계속해서 소멸되어 가는 느낌이었다. 열심히 하면 뭐든 잘할 거란 생각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내 마인드 만으로 원하는 것을 끌어당길 수 있다는 시크릿에 대한 믿음도 서서히 꺼져만 갔다. (애초에 우주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갈 거란 생각 자체가 오만한 생각이었다; ) 퇴사 전 한달은 간병 때문에 재택근무로 인수인계를 진행했다. 차라리 빨리 그만두게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회사 대표님은 내 사정을 알고 한달치 급여라도 더 받아가게 해주고 싶으셨단 걸 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런 배려조차 부담스럽고 귀찮기만 했다. 결국, 그렇게 3월 31일 예정이었던 퇴사는 나의 의사로 3월 22일로 마무리 되었다. 

 

고양이의 항암치료가 생각보다 잘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할 즈음엔, 그래도 타투이스트 공부를 제외하면 다른 것들은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가족과 사랑하는 고양이 두마리만 있으면 못할 것이 무엇일까, 하고 나는 다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마시던 술을 끊고, 건강을 회복하려 애썼다. 퇴사 즈음에는 목디스크 증상과 허리 통증이 심각했고 자궁에 이상 소견이 있어 가벼운 수술도 받았었다. 그렇지만 몸은 늘 그래주었 듯 다시 회복하고 있었다. 무절제한 음식 섭취를 자제하고 간헐적 단식과 저탄수화물 식단을 시작했고, 운동량을 늘렸다. 내가 건강해야 아빠도, 고양이도 돌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4월 초, 고양이의 복강에 엄청난 크기의 종양이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자라고 있다고 들었다. 이 이상은 치료도 무리긴 하지만, 그렇다고 항암제를 중단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의사와의 수없는 논의 끝에 항암을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종양이 줄어들지 않으면 주변 장기를 모두 압박해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아이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보다, 나에게는 아이가 덜 고통스러운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4월 19일 새벽, 내 사랑하는 애묘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4년 전 어머니의 죽음 때 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사랑하는 이의 두번째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설명할 필요도 없이 무작정 망가져 보았다. 글로 쓰기도 벅찰 만큼 몸과 마음을 한껏 괴롭혔다. 그리고 지난 주 목요일,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사게 된 백화등 화분을 계기로 식물을 키우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제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온몸으로 느껴지는 숙취와 허리통증 , 목통증 등을 느끼며 '아하.. 이제 바닥을 친 것 같다..'라고 생각했다. 전에도 느껴본 적 있는 기분이었다. 

사랑하고 사랑하는 나의 아름다운 친구가 보내준 푸른 수국. 내 고양이와 내게 위안을 주는 감사한 인연이다. 이 푸른 수국을 보며 한 주는 또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바닥을 치면 나는 곧 일어선다. 늘 그래왔다. 

죽고싶다고 수십번을 생각했지만, 이렇게 몇 주를 나 스스로 괴롭힌 것이 결국은 살고싶어서였을까.. 싶기도 하다. (바닥을 치고 나면 소생한다는 그 단순한 원리를 몸이 경험으로 알고있었으리라;; )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런 나를 한결같이 지켜주는 친구가 있다. 친구는 내가 이 블로그를 시작한 줄도 모르긴 하지만, 그녀가 아니었으면 나는 벌써 어떤 방식으로든 이 세상에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녀에게 느끼는 깊은 애정과 감사의 마음은 평생동안 갚아갈 예정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우정 + 비루한 자기애로, 나는 다시 일어나서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너덜너덜한 마음이지만, 몸을 움직여 흙을 만져가며 분갈이를 하고 식물 냄새를 맡고, 더이상 유해한 영상들과 먹을 것 마실것에 몸을 내맡기지 않고 있다. 다시 남은 고양이를 어루만져줄 수 있게 되었고,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나에겐 식물을 키우기 시작한 이 작업이 매우 중요한 서바이벌 포인트가 되어 버렸다. 사실 나는 천성적으로 누군가를 돌보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돌봄을 받는 것 또한 좋아한다.) 이렇게 아버지를 돌보고, 식물을 돌보고, 남은 고양이를 돌보고, 나를 돌보아 갈 예정이다.  "예정이다". 계획이 아니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이제 어떠한 계획도 세우지 않기로 했다. 

 

나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에크하르트 톨레, 마이클 싱어, 그리고 유튜버 화이트 래빗님이 늘 강조하는 말이 있다.

고통스러울 때에는 현실로 도망치라고 말이다.
지금, 이순간을 살아가라는 그 말이 가장 큰 위안이자 벗이 되었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현실을 살며, 그것에 내 삶을 그냥 내맡기는 것.
그것만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오후에 분갈이 작업을 마치고, 직접 만든 오렌지 마멀레이드와 버터, 햄으로 통밀 토스트를 만들어 먹었다. 새참은 꿀맛이었다.

행복한 하루였다. 몸을 많이 움직였고, 생각은 덜했다. 식물을 키우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생각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좋았고, 몸을 쓰니 때가 되면 배가 고팠다. 쓸데 없는 음식들이 떠오르거나 하지 않았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행복감이 충만했다. 

저녁식사 후, 낮에 분갈이 했던 화분들을 들여 놓고 재즈를 들었다. 물론 친구가 보내준 수국이 센터를 차지했다.

오늘을 잘 살았다. 내일도 그럴 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현재의 시간을 나를 위해 잘 소비하고 있다. 몇 달 전의 예상과는 많이 다른 풍경이긴 해도, 내가 원하던 여유롭고 아름다운 퇴사 후의 밤 풍경이다. 옆에는 귀여운 고양이가 몸을 동그랗게 말고 새근거리며 자고 있다. 이것으로 나의 하루는 완벽하다 할 수 있겠다. 잠을 자고, 또 내일을 맞이하도록 하자.

몸을 동그랗게 말고 새근거리며 자고 있는 페르시안 친칠라. 친구를 잃고도 내 옆을 지켜준 고마운 아이.

하루에 두명도 채 보지 않는 블로그지만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밤이 평온하고 따스하길 바란다.

 

마음 밑바닥에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음을 느꼈다면, 당신이 지금 이 순간을 부정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삶을 회피하고, 삶에 저항하고, 삶을 부정하고 있지는 않은 지 살펴보세요.

- 에크하르트 톨레 <이 순간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