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마음에 커다랗게 구멍이 뚫려버렸다.
그날 이후 ..공허함은 하루 하루 커져 갔고, 이 현상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4월 19일.. 키우던 고양이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나에게는 반려, 냥이, 주인님.. 그 어떤 단어로도 채울 수 없는 소중한 존재였기에, 그날 이후 모든 일상은 all stop 되었다. 술을 마시고, 폭식을 하고, 남아 있는 고양이를 한껏 예뻐해 주고, 유골함을 가져와 작은 성전을 꾸며 보아도 혼절할 것 같은 상실감은 회복되지 않았다. 그냥 '정지'.. 정지 상태가 되어 버렸다.
지난 주 목요일, 아파트 분수대 근처에 장이 서는 날. 건어물 가게에 김을 사러 나갔다가 트럭에서 화분과 꽃을 놓고 파는 아저씨를 보았다. 이 동네에서 꽤나 잔뼈가 굵은 듯 아주머니들과의 흥정에 여념이 없어 보였고, 그 틈을 타서 (주목받고 싶지 않았다..) 나는 몰래, 예쁘게 전시되어 있는 화분들을 빠르게 흝었다. 항상 화초 뜯기를 좋아하던 냥이가 생각나, '청초한 거 하나 사서 유골함 근처에 놓아주자..'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저씨가 힐끔힐끔 나를 보는 게 느껴졌다.. 아마도 강력한 식물 초짜의 포스를 감지했을 것이다. 나는 서둘러 건어물 가게에서 장을 보고 화초 트럭을 지나쳐 집으로 향하려 했다. 그 때였다. 트럭 옆에서 달콤하고 유려한 향기가 나를 붙잡았다. 돌아보니, 휘영청 늘어져 있는 예쁜 잔가지, 새초롬한 노란 꽃이 피어있는 꽃나무가 있었다. 홀려 있는 내 얼굴을 보고 아저씨는 재빨리 오셔서 키우는 방법이며 식물 이름이며, 어떤 사연이 있어서 자신이 몹시 아끼는 아이인지 온갖 미사어구를 늘어놓기 시작했고, 5분 후 나는 얼마를 계산했는 지도 모른 채 너털너털 화분을 안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자, 이것은 "백화등" 이라는 화분이라고 한다.
집에 와서 조금 알아보니 엄청난 바가지를 썼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첫 화분인 만큼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사실, 화분을 사오고 나서도 며칠 동안은 폐인처럼 생활했다. 울며 술을 마시고 , 아무거나 먹고, 아무거나 보고, 아무 때나 잤다..그리고 엊그제부터 바닥을 끝까지 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고, 식물들을 좀 더 사들여서 키워보면 어떨까 싶어 하루종일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고 몇개의 묘종을 샀다. 주로 고양이에게 해롭지 않은 화초나 꽃나무 종류, 그리고 허브 몇 가지.
오늘 새 묘종 5개가 도착했고 내일은 분갈이를 시작할 예정인데.. 휴.. 이걸 내가 제대로 해나갈 수 있을 지는 정말 모르겠다. 그렇지만 일단 시작한 이상, 하늘나라로 간 우리 꼬마에게 작은 화초들의 정원을 만들어 주겠다는 일념으로 예쁘게 가꾸어볼 생각이다. 어차피 슬퍼하는 거 이외엔 별로 할 일도 없다. 해보도록 하겠다, 플랜테리어.
어차피 슬퍼하는 거 이외엔 별로 할 일도 없어..
그래, 나도 해본다, 플랜테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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